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 킵 손: 그들이 지구에 만든 ‘우주’라는 창

2018.04.16 14:07


지금 여러분이 계신 공간을 지구 전체라고 상상해보세요. 그렇다면, 창밖 풍경은 아마 ‘우주’일 것입니다. 창이 많을수록 바깥의 우주는 더 자주, 더 자세히 보일 테죠. 지구에 창문 만들기! 이것이 바로 우주 학자들이 하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 천문학 교수 앤드류 코놀리도 2014년 열린 그의 TED 강연, 『우주 깊숙한 곳을 향하는 다음 창문을 찾아서(What’s the next window into our universe?)』에서 ‘창문’이란 표현을 사용했었죠. 


지난 3월 타계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과학 소설을 집필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영화 <인터스텔라>의 자문을 맡은 이론물리학자 킵 손. 이들은 모두 우주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입니다. 우리에게 우주를 향한 ‘창문’을 만들어준 이들이죠. 이 세 명의 학자들이 기억되는 이유, 그 결정적 업적들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無를 이론화하다!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영국, 1942~2018) 


2008년 NASA 창설 50주년 기념 강연회에 참석한 스티븐 호킹과 그의 딸 루시 호킹 

/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goo.gl/lRHFDY)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로 불렸습니다. 신체적 장애가 결코 삶의 한계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죠.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을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 까치, 2010, 15쪽


그 스스로 “철학은 이제 죽었다”(같은 책, 9쪽)라고 선언했음에도, 왠지 철학적으로 들리는 질문입니다. 빅뱅 이론(‘무’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생성됐다는 이론)과도 자연스레 연결되죠. 호킹은 빅뱅 이전, 즉 ‘무’라는 개념으로만 인식됐던 상태를 이론화해 유명해졌습니다. 1966년 수학자 겸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와 함께 발표한 ‘호킹-펜로즈 특이점 정리(Hawking-Penrose Singularity Theorem)’를 통해서였죠. “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했던 셈입니다. 


‘우주는 팽창한다’라는 사실은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에 의해 관측됐습니다. 1965년에는 우주 마이크로파(우주를 가득 채운 열 복사로, 오래전 우주는 지금보다 더 뜨겁고 고밀도 상태였음을 뜻함)의 존재가 확인됐죠. 빅뱅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발견들입니다. 호킹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니, 더 뒤로 갑니다. 팽창이 아닌 수축이라는 역방향으로 우주 생성을 되짚어간 것이죠. 


‘호킹-펜로즈 특이점 정리’에 따르면, 무한대로 작은 특이점에 모든 물질이 응집돼 있었고, 이것이 빅뱅을 거쳐 현재 우주의 상태로 팽창됐으며, 그 팽창은 지금도 계속된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우주 연구자들이 발견만 하고 열지는 못하던 문의 열쇠가 됐죠. ‘무에서 유가 생겨났음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 말입니다. 



외계 생명체 연구로 대중과 호흡하다!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미국, 1934~1996)


칼 세이건은 천문학자이자 외계 생명체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외계 생명체라니, 왠지 공상과학 작품에나 나올 법한 얘기죠? 


‘우주 생물학(Astrobiology)’. 그가 몰두했던 학문의 명칭입니다. 지구 바깥 행성들에서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밝혀내는 연구 분야이죠. 그는 25세 때 「행성에 대한 물리적 연구(Physical Studies of Planets)」라는 논문으로 시카고 대학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달의 유기물, 금성의 유기 분자 등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는데요. 이후 자신이 평생을 바치게 될 우주 생물학 연구의 서막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1987년 미국 코넬대학교 강단에 선 칼 세이건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https://goo.gl/u2NN47)


이십 대 중반에 천문학 박사라니, 과연 ‘천재’라 불렸던 인물답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스물세 살 때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이죠. 저명한 생물학자 조슈아 리더버그(Joshua Lederberg)의 추천 덕분이었는데요. 칼 세이건은 당시 NASA가 진행하던 우주 생물학 연구에 자문 위원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조슈아 리더버그로부터 배운 생물학적 지식, NASA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 자신의 명석한 통찰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 바로 위 논문이라 할 수 있죠.


칼 세이건은 대중이 사랑한 학자였습니다. 강연, 저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호흡했죠. 가급적 쉽고 정확히, 대중에게 자신의 우주 생물학 연구를 공유하려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콘택트(Contact)>라는 소설까지 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외계인을 찾던 천문학자가 결국 외계 문명과 ‘접촉’한다는 줄거리인데요. 작품 속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왠지 칼 세이건의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천재’ 천문학자는 왜 이토록 강렬히 외계 생명체에게 끌렸던 걸까요.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 우리는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Cosmos)>, 사이언스북스, 103쪽


우리 자신, 즉 인간을 이해하고자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는 천문학자. 현대 철학의 ‘타자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진리 탐구를 향한 열정은 서로 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를 연출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콘택트>(1997).

당시 할리우드 최고 스타였던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 앨리 박사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칼에게 바칩니다(For Carl)’라는 추모 자막이 나오는데요. 

원작자인 칼 세이건이 개봉 전인 1996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daum 영화(https://goo.gl/4Q4Udp)



100년 만에 열린 우주의 창, 중력파 

킵 손(Kip Stephen Thorne, 미국, 1940~)


<콘택트> 집필 당시 칼 세이건이 자문을 구했던 인물.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물리학자. 영화 <인터스텔라>의 제작자 중 한 명. 바로 킵 손입니다. 


지난 몇 년간 ‘타임슬립 콘텐츠’ 바람이 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나인>, <시그널> 등 시간여행을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었죠. 타임슬립의 현실 가능성을 논한 과학 칼럼들도 볼거리였습니다. 특히 ‘중력’과 ‘아인슈타인’이라는 키워드들이 자주 언급됐는데요. 


2014년 <인터스텔라> 개봉 당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왼)과 함께 

『타임』지의 인터뷰 방송에 출연한 킵 손 

/ 이미지 출처: 『타임』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https://goo.gl/rxuoDB)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을 발표하며 우주에 ‘중력파(gravitational waves)’가 존재하리라 예견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수수께끼’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시공간은 중력파에 의해 변형될 수 있습니다. 거대 천체들이 충돌하고 합쳐지면 강력한 중력 에너지가 발생하고, 잔잔했던 우주 공간에 물결처럼 중력파가 일게 됩니다. 이때 시간 흐름과 물체 위치가 일시적으로 바뀌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타임슬립의 가능성이 이야기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의 예견 100년 만인 2015년, 마침내 중력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네 명의 노과학자가 그 주역들이었죠. 킵 손,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배리 배리시(Barry C. Barish), 그리고 오랜 투병 끝에 2016년 3월 타계한 로널드 드레버(Ronald Drever). 생존해 있는 세 명이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네 학자는 일명 ‘라이고(LIGO)’라 불리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 Wave Observatory, www.ligo.caltech.edu)’를 직접 설계하는 등 40여 년간 중력파를 연구했습니다. 라이고는 2015년 9월부터 두 차례 가동을 통해 총 네 번의 중력파 현상을 관측하며 역사적인 성과를 이룩했죠. 현재 킵 손 등이 이끄는 라이고 과학협력단(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www.ligo.org)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약 20개국 1,000명 이상의 연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요.


중력파를 알기 쉽게 설명한 애니메이션(한글 자막 제공) 

/ 영상 출처: 라이고 과학협력단 홈페이지(https://goo.gl/JAJpWU)


오랜 시간 중력파는 우주 기원의 비밀을 풀 열쇠라 불려왔는데요. 그 실체가 입증된 만큼, 향후 우주 연구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진일보를 이룰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주로 향하는 거대한 창문이 무려 1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셈입니다. 



우리는 지구인이자 우주인


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 킵 손은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우주 학자들입니다. 그들과 대중의 거리만큼, 이제 우주도 우리 일상과 가까워진 듯합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우주의 창’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이 창은 언젠가 우주를 향한 문이 되지 않을까요? 


이미지 출처: Unsplash


지구에 사는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지구는 우주의 행성이므로, 우리는 우주인이기도 하죠. 한국인이 아시아인, 세계인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을 ‘우주 대스타’라 칭하는 어느 연예인처럼, 우리도 때로는 우주인의 태도로 지구의 일상을 살아내 보면 어떨까요. 오늘도 우주적 하루 보내세요!  



께 읽어볼 기사·칼럼·강연(이 글이 참고한 글과 영상 들입니다.)


앤드류 코놀리 강연 『우주 깊숙한 곳을 향하는 다음 창문을 찾아서』(TED, 2014)

https://goo.gl/TzSmBp


『우주로 사라진 천재 호킹이 남긴 것들』(주간조선, 2018.03.26)

https://goo.gl/udRjCW


『호킹의 삶은 ‘인간의 위대한 승리’』(2018.03.15)

https://goo.gl/ABQfgQ


과학 저술가 김형자 칼럼 『우주로 사라진 천재 호킹이 남긴 것들』(주간조선, 2018.03.30)

https://goo.gl/M6BYGd


천문학자 이명현 연재 칼럼 『칼 세이건 전작 읽기』 1회 「논문으로 읽는 칼 세이건: 25세 청년, 우주 생물학을 창시하다!」(사이언스북스 블로그, 2017.08.08)

https://goo.gl/1uuK1q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

https://goo.gl/nmiYTL


『외계인과 만날 확률, 외계인과 말 통할 확률…뭐가 더 낮을까요』(경향신문, 2017.02.05)

https://goo.gl/Rj9UyP


노벨물리학상, 100년 만에 중력파 존재 입증』(더 사이언스타임스, 2018.04.10)

https://goo.gl/GZzwLS


『다음 차례는 우주 시원 엿볼 ‘배경 중력파’』(한겨레 토요판, 2016.02.19)

https://goo.gl/iMMHUz


앨런 애덤스 강연 『중력파 발견이 가지는 의미』(TED, 2016)

https://goo.gl/Q4W56q



Posted by Say Sa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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